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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여다보는 성경 말씀/신학 용어 해설

신인 동성 동형론 (Anthropomorphism)

by angelap1004 2023. 7. 3.

신인 동성 동형론 (Anthropomorphism)

여호와는 인간과는 달리 육체를 가지시지 않은 순수한 영이시다. 따라서 인간의 오관(五官)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딤전 6:15-16). 또한 여호와는 완전히 도덕적이시며, 완전한 지성적, 주권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에서 인간과는 구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여호와를 인간과 유사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때가 많다. 본장에 있어서도 선하신 여호와께서 '질투하시며',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진노를 격발하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6절). 이처럼 여호와를 인간의 용어로 표현하거나 혹은 인간의 품성을 지닌 것처럼 묘사하는 것을 '신인 동형 동성론 (神人同形同姓論)'이라 한다.

 

1. 용어

이에 해당하는 영어(Anthropomorphism)는 헬라어 '인간'(anthropos)과, '형태'(morphe)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원래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성격을 지님을 표현한 용어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다신 종교 뿐만 아니라 고대의 다른 나라 종교에서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종종 신을 인간적 형태로 묘사한다. 따라서 이것은 종교학과 문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2. 성경적인 용례

구약에서 여호와는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시고'(창1:3), '보시며'(창1:4), 서늘할 때 에덴 동산을 '거니시는(창3:8) 분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여호와의 형상(민12:8), 여호와의 발(출24:10), 여호와의 손(사50:11) 등과 같은 표현으로 마치 인간과 같이 사지(四肢)육신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육체적인 특성 외에도 '질투하시며'(출20:5), '분노를 발하시고'(시77:9), '자비롭고(욘4:2), '능력이 많으시며'(시147:5), '자비와 은혜가 넘치시고'(시103:8), '후회하시는'(삼상15:11),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신 분으로도 묘사된다.

또한 '목자'(시23:1), '신랑'(사23:1), '용사'(출15:3) 등과 같이 인간의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를 여호와께 적용시키기도 하였다. 신약에는 구약보다는 이러한 표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나 역시 '말씀하시고'(히1:1), '보내시고' (요17:8), '택하시고'(엡1:4), '예정하시고'(엡3:11), '사랑하시는'(요3:16) 분으로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손(요10:29)과 품(요1:18)과 얼굴(마18:10)을 가지시며, '아버지'(마6:9), '왕'(계4:2) 등의 인간적인 용어로 표현된다.

 

3. 동형론(同形論)과 동성론(同姓論)

신인 동형 동성론을 보다 세분하여 본다면 순수하신 여호와를 육체를 가진 것처럼 묘사한 동형론과 여호와를 인간의 지, 정, 의 (知情意)와 인격에 비추어 묘사한 동성론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A. 동형론

비물질적 존재인 여호와를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빌어 설명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순수한 은유(隱喩)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여호와께서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성(城)과 대(臺)를 보시려고 강림(降臨)하셨다는 표현은 여호와가 높은 곳에 계시다가 위치를 낮추시어 이 땅에 내려오신 동작을 나타낸 것이 아니다.(창11:5) 이것은 순수한 의인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악한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시며 자비를 보이신 지금까지의 태도를 변호아시켜 공의의 심판을 행하시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문자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와 같이 여호와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이러한 동형론적 표현은 주로 여호와의 의지에 강조점을 두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여호와의 팔은 전능하신 의지적 능력을(출6:6, 시89:13), 코는 공의로우신 분노를(삼하22:9, 시18:8), 입은 절대 변개치 않으시는 말씀을(시33:6), 눈은 모든 것을 살피시며 아시는 전지하심을(대하16:9) 나타내신다는 사실로서도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

 

     B. 동성론

동형론이 여호와께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표현하여 여호와의 행위나 속설을 표현한 순수한 은유라면, 동성론은 무한한 여호와를 유한한 인간에 비유해 설명한 강조적 표현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여호와는 지정의를 갖춘 인격적 존재로서 도덕성과 추진성 및 생명성을 가지고 계신다. 여호와의 형상을 부여받아 창조된 인간 역시 이러한 속성을 갖고 있으나 무한하신 여호와에 비해 유한하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따라서 동성론적 표현은 제한적 존재인 인간에게 무한하신 여호와의 품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와의 언약에 있어서 무지개를 보고 인간과의 언약을 '기억하겠다'(창9:16)는 표현은 여호와가 인간처럼 건망증이 있어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것을 무지개를 보고 불현듯 떠올린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언약은 언제나 기억하시고 성실하게 수행하신다는 것을 무지개의 표징으로 나타내심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원칙은 여호와의 근심(창6:6), 노함(출22:24), 질투함(민25:11), 맹세함(시62:8), 이상하게 여김(막6:6) 등의 표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4. 성육신과의 관계

신인동성동형론은 여호와를 인간적 행동이나 품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묘사하여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문학적인 방편인 반면, 성육신은 여호와가 직접 인간 가운데에 인간의 몸을 입고 임하심을 가리킨다. 즉 신인동성동형론은 범죄함으로 영안(靈眼)이 흐려진 인간이 잃어버렸던 여호와에 대한 정보를 다시 인간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으나, 성육신은 직접 인간들 가운데에 여호와가 임하심으로 지금까지 감추어진 여호와의 자기 계시이나 후자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완전한 자기계시라는 차이점을 지닌다.

5. 해석상의 위험

신인동성동형론은 무한하신 여호와를 유한한 인간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므로 항상 오해의 위험이 따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영적, 지적 파악력이 여호와에 대해 아는 것에 미치지 못하며, 인간의 문자도 영적 진리를 전달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신인 동성 동형론이란 '인간적 표현'은 또 다른 전달상의 문제를 지님으로 오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인 동성동형론 표현을 해설할 때는 항상 여호와는 무한하신 반면 인간은 유한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동성론적 표현일 때는 인간의 지정의나 인격이 순수하지 못하며, 복합적이라는 사실로 인해 여호와의 순수성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1:24에 나오는 여호와의 슬픔을 해석할 때 인간의 슬픔이 내포하는 연약함, 상실감, 분노, 좌절 등을 여호와께 적용시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여호와의 슬픔은 부모가 자식을 징계할 때 갖는 쓰라림과 같이, 범죄한 인간들을 향해 심파하실 때에 그 같은 사랑과 안타까움으로 징계하심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의의

성경 가운데에서 신인동형동성론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들어 혹자는 이방의 신화에서 발전되듯이 절대자 여호와에 대한 신관(神觀)의 미성숙 때문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핞나 인간에게 무한한 여호와를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을 무시한 잘못된 견해이다. 이 표현은 무한하시고 계신 여호와께서 자신을 연약한 인간에 대비하시기까지 스스로를 낮추심으로,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여호와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깨달으며 신인동형동성론적 사랑의 결정(結晶)인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여호와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제한적인 의미에서 '신인동형동성(神人同形同性)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랜드종합주석 신명기 32장 pp.871-874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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